파이프 연초 리뷰/해외 직구 연초

[Seattle Pipe Club] Down Yonder

Jace Kai 2024. 4. 1. 18:14

위키백과에 따르면, 'Down Yonder'는 '저쪽 아래'라고 지리를 가리키는 옛 구어입니다. 제가 SPC 관계자가 아닌 이상 뇌피셜에 불과하겠습니다만, SPC에서 출시된 버지니아 연초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Hogshead(1607~1775), Give Me Liberty(1775), Virginia Jazz(1890~1920)에 이어 1921년에 릴리즈된 노래 'Down Yonder'를 모티브로 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가 붙은 버전도 있고 그냥 연주곡도 있는데, 정말 전형적인 미국식 컨트리에 기반한 노래입니다.  

사실 Down Yonder는 이걸 굳이 경험해 보아야 하나 고민이 있었던 연초이긴 합니다. 크게 1) Joe Lankford 작고 이후에 나온 연초라는 점, 2) 단일 컨텐츠로 피우기에 애매한 스토브드 버지니아가 메인 컨텐츠라는 점 3) 전작인 Virginia Jazz의 밸런스가 엉망이었던 점이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SPC는 Joe Lankford가 이 블렌드를 고안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일단은 믿어보기로 합니다.

Specs.

  • Blend Type: Straight Virginia
  • Contents: Virginia
  • Cut Type: Krumble Kake
  • TR Score: 2.6

TR에서는 그렇잖아도 몇 개 없는평가가 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그 와중에 Jim Inks옹은 4점 만점을 주었습니다. 별점 한 개짜리 리뷰는 이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에 총 2개가 있는데, 별점 테러를 한 근거는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 Sufliff 507s를 그냥 뭉쳐논 것에 불과하다
  • 땄는데 곰팡이가 펴 있었다

각각의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사견을 적겠습니다.

Tin Note

틴을 따면 구운 버지니아 특유의 카라멜라이즈드된 향이 치고 올라옵니다. 보통 버지니아 계통은 가공 방식과 무관하게 처음 틴을 개봉했거나 밀봉된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새콤한 산미가 도드라지는데 Down Yonder는 살짝 차분한 느낌입니다. 한김 돌고 나면 카라멜향은 더욱 진해집니다. 크럼블케익이긴 하나 끈기가 없어 쉽게 부서지며, 이미 물건이 도착한 시점에서 여기서기 구르면서 충격을 받았다 보니 절반 정도는 박살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연초의 조도를 보았을 때 스토브드 버지니아 이외의 레드/옐로우 버지니아는 아예 없는 듯합니다. 만지거나 비벼보았을 때 매우 쉽게 부셔지며, 그런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수분이 제법 상당합니다. 

Smoking Note

예상대로 달콤한 노즈필과 마우스필이 들어옵니다. 초반이야 토핑이나 원재료의 힘으로 어느 정도 그럴 수는 있는데, 문제는 중반 이후에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마우스필이 유지가 됩니다. 단순히 눈을 가리고 맛을 보자면 새콤고소한 레드 버지니아의 특성과 달달하고 부드러운 스토브드 버지니아의 장점을 반씩 섞어놓은 느낌입니다. SPC Signature Series의 가장 큰 장점인 '느리고 쿨하게 타는' 특성이 이번에도 진가를 발휘합니다. 스토브드 버지니아는 특유의 다소 가볍고 느끼한 마우스필 때문에 나도 모르게 퍼핑 페이스를 올리기 쉬운데, 맛이 적당히 잘 전달되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연초가 워낙 촉촉하기 때문에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한 노련함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그래도 역시 구운 연초라는 본질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인지, 후반부에 들어서면 다소 텁텁한 뒷맛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양호합니다. 카벤디시가 일절 들어가지 않은 연초들 중에서도 후반부가 이보다 거친 연초는 쌔고 쌨습니다.

그럼 잠깐 위에서 언급된 별 하나짜리 리뷰들을 살펴봅시다. 우선 저는 Down Yonder가 507s의 케익 버전이라는 리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507s는 전형적으로 스토브드 버지니아의 절망편을 보여주는 연초입니다. Down Yonder와 507s의 맛이 똑같다고 느낄 정도의 미각이면,  디스 아프리카를 까서 파이프에 넣고 피워도 Briar Fox와 똑같은 맛이 날 것입니다. 다만 다른 리뷰에서 언급한 곰팡이 이슈 제 생각에 사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특정한 제품의 특정 배치에서 무더기로 현상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화가 날 만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연초 자체에 별점 테러를 하는 것이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집단 지성의 한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돌아가서, 연초에 수분 함량이 높은 것 같다는 것은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퍼핑에서도 드러납니다. 어지간한 구력으로는 후반부에서 불 유지가 살짝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재우는 게 부실했다, 호흡이 불규칙했다의 레벨이 아니라 쥬스가 어느 정도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로 말려가면서 태우는 것보다는 그냥 적당히 털어내는 걸 추천합니다. 카벤디시나 스토브드 토바코는 억지로 불을 유지하려고 애쓰다보면 파이프가 과열됩니다. 다 태운 후 파이프 청소를 해 보면 쌓이는 케익 역시 다른 연초와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니코틴 강도는 보통이고 룸노트는 부드러운 맛에 비해서는 좀 별로지만 그럭저럭 봐줄만 합니다.

총평

초보 뻐끔이에게 너무나도 추천하고 싶지만 아마도 파이프를 태워먹을 각오를 좀 동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워적으로 연초를 더 말려서 피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데, 말리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조금 더 수월하게 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다지 별난 향이 없고 케익이 빠르게 쌓이는 특성상 파이프의 브레이크인 용도로 태우기에도 적당할 것 같습니다. Signature Series 중에서는 Hogshead를 이어 두 번째로 괜찮았던 연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