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연초 리뷰/단종 연초

[Cornell & Diehl] Carolina Red Flake with Perique 2021

Jace Kai 2021. 11. 30. 02:11

2017년에 공장을 닫긴 했지만, 맥크렐랜드(McClelland)는 독보적인 연초 생산으로 애연가들에게 매우 인기있었습니다. 맥크렐랜드가 문을 닫게 된 공식적인 이유로는, 인건비 상승과 재배 면적 축소로 인해 더 이상 질 좋은 원료, 특히 레드 버지니아의 수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초는 블렌더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원료가 되는 담배잎의 퀄리티가 결정적이라는 것이죠.

 

대체 이게 어딜 봐서 한 회사에서 출시된 연초인가 싶을 만큼 디자인도 제각각이지만, 퀄리티는 다른 연초와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맥크렐랜드라는 호랑이가 사라진 지금, 다음 왕좌를 노리는 여우는 과연 누구일까요? 코넬앤딜의 스몰 배치(Small Batch) 시리즈는 분명 후보 여우 중 하나입니다. 양질의 원재료를 구하기가 훨씬 쉬웠던 과거의 맛을 재현하겠다는 기치로, 몇 종류의 연초를 소량 한정 생산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평타 이상의 평가가 있어서인지, 출시된지 며칠이면 흔적도 없이 팔려나가는 시리즈입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연초는 이러한 스몰 배치 시리즈 중 하나인 캐롤라이나 레드 플레이크(Carolina Red Flake)의 2021년 버전입니다.

 

 

캐롤라이나 레드 플레이크는 2016년 2,400틴 한정 생산을 시작으로, 점점 수량을 늘려 올해에는 15,000틴이 한정생산되었습니다. 출시된지 하루이틀만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모았는데요, 틴에 일일이 찍힌 일련번호가 소장 욕구를 더욱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최상급 캐롤라이나 레드 버지니아 중에서도 맨 꼭대기의 잎 네장만 사용하여, 옐로 버지니아와 함께 블렌드한 이 연초는, 최상급답게 압도적인 당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려 14%나 되는 당분 함량을 자랑하는데, 여기에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스트레이트 버지니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 제임스 페릭(St. James Perique)을 소량 첨가하였습니다. 뭐 설명만 들어서는 어벤저스가 레슬링 경기장 위에서 섬머 슬램이라도 할 것 같은 그런 수준인데요, 실제 맛도 그러한지 살펴보겠습니다.

Spec.

  • Blend Type: Virginia/Perique
  • Contents: Virginia/Perique
  • Cut Type: Flake
  • TR Score: 3.7

Tin Note

틴을 열고 느껴지는 첫 인상은, 맥크렐랜드 크리스마스 치어나 40주년 기념 블렌드에서 케첩향이 한소큼 빠져나갔을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얼추 맞습니다. 케첩향은 레드 버지니아가 어느 정도 숙성이 일어나야 발생하는 것이므로, 장차 이 녀석이 맥크렐랜드같은 감동을 줄 수 있는지는 조금 더 두고 보겠습니다. 그밖에도 건초가 아닌 쌩 풀비린내가 약간 있는데, 이 때문인지 해외 리뷰에서도 약간의 에이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이 종종 보입니다.

컷타입이 플레이크이기는 하나, 사무엘 가윗이나 던힐에서 볼 수 있는 넓적한 플레이크가 아니라, 다소 두툼하고 조그마한 플레이크입니다. 맥크렐랜드나 지엘피스의 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형태의 플레이크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Smoking Note

첫 챠링을 끝내고 나면, 생각보다는 단조로운 맛과 향에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페릭이 더해지긴 했으나, 중반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페릭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심심해질 수 있는 버지니아의 풍미를 살짝 어시스트만 해주는 느낌입니다. 페릭의 함량이 매우 적어서인지, 아니면 이게 전설에서나 듣던 생 제임스 페릭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서포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생각하게 해 줍니다. 연초 스펙이나 설명만 봤을 때는 뭔가 침샘이 폭발하는듯한 버지니아/페릭 블랜드를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이전의 Carolina Red Flake의 전통적인 뉘앙스를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심심함만 덜어내려는 목적으로 페릭을 블렌딩했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읽힙니다.

전반적인 느낌이 마치 주야장천 김밥천국만 들락거리다가 어디 상견례에나 어울릴법한 고급 한정식당에서 신선로를 맛보았을 때의 느낌과 흡사합니다. 비싼 돈 내고 음식을 시켰더니 생각보다 심심한 간에 이게 뭔가? 싶다가 점점 씹을수록 깊은 맛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그런 것 말이지요. 뭔가 화려하거나 다이내믹함과는 거리가 있고, 깔끔함과 꾸준함으로 승부하는 고퀄리티의 연초입니다. 담배뿐 아니라 어떤 먹거리에서도 복잡함(Complexity)과 깔끔함(Clean Cup)은 양립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라 초-중-후반부로 이어지는 파이핑 시간동안 맛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합니다만, 바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4%에 달하는 당분 함량 탓에, 뒷맛에 오래 지속되는 단맛의 여운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버지니아-페릭의 교과서같은 연초인 레이너 골드(Reiner - Long Golden Flake) 정도의 폭발적인 단맛이라기 보다는 버지니아의 고소함 뒤에 올라오기 시작해서 꾸준히 입 안에 맴도는 단 맛이며, 질감이 굉장히 끈적합니다.

틴노트부터 시작해서 중간중간에 감지되는 grassy한 힌트는 이 연초의 전반적인 컨셉에 그다지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닙니다. 이건 약간 아쉬운 부분이며, 에이징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 부분이라 예상합니다.

플레이크인걸 감안해도 다소 수준이 많고 꾸덕한 느낌이라, 불 유지는 다소 신경쓰는 편이 좋겠습니다. 잦은 리라이팅으로 이런 연초의 맛을 죽이는 것은 상당히 아까운 일입니다.

 

총평

초심자가 막 맛있게 피울 만한 연초는 아닙니다. 맥크렐랜드의 향수가 진한 분들께는 약 70-80% 정도의 대리만족을 주는 좋은 연초라고 생각됩니다. 코넬앤딜 역시 전반적으로 깔끔한 컨셉을 자랑하는 메이커이긴 하나, 캐롤라이나 레드는 그간의 코넬앤딜과도 궤를 달리 하는 수퍼 깔끔함이 있습니다. 이번 연초는 그러한 코넬앤딜의 한계를 뛰어넘어 맥크렐랜드의 아성에 감히 도전할 만합니다.

2021년 9월에 생산을 완료하고 틴에 봉입된 연초라 그런지, 약간 덜 성숙한 느낌이나 중간중간 따로 노는 듯한 힌트가 여전히 보입니다. 에이징 포텐셜이 워낙 좋은 버지니아/페릭 조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원재료의 뒷심이 엄청난 연초라 세월의 힘을 기대해 볼 만합니다.

다소 급하게 피우는 스모커라도 자극을 심하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잘 안배된 페릭의 존재감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기존에 알던 페릭이 공형진이나 유해진같은 느낌이라면, 캐롤라이나 레드에 포함된 페릭은 이경영이나 조우진같은 느낌? 뭐 아직 제가 생 제임스 페릭을 안다고 말할 만큼 구력이 깊지 않으니, 이건 조금 더 다양한 연초를 태워본 뒤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현 시점에서 이 연초의 가장 큰 단점은, 더 이상 공식적인 유통 경로로 구할 길이 없는 한정판 연초라는 것뿐입니다. 마음이 동하시는 분들은 내년 9월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P